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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맞이하는 아침

비행기 좌석이 불편해서 그런지 깊이 잠들지 못하고 중간에 여러번 깼다. 실내 공기가 건조하니 자꾸 물을 찾게 되고, 그러다보니 화장실에 여러번 가게 되고. 그렇게 자다 깨기를 여러번. 어느새 착륙이 두 시간 앞으로 다가왔고, 두번째 기내식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비행기에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배가 고플까, 가만히 있어도 배가 고픈데 쉴새없이 돌아다니는 승무원들은 얼마나 배가 고플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순식간에 눈앞의 밥을 먹어치웠다.

식사를 끝내고 프로페셔널하게 멍때리기를 하다보니 귀가 멍멍한 느낌이 들었다. 고도를 낮추면서 기내 압력이 높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인천공항에서 느꼈던 감정보다 한단계 격상된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평생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땅, 호주에 왔구나. 도착지 공항의 날씨가 좋아서 별다른 문제 없이 착륙할 수 있었다.

시드니 공항에서의 첫 인상은 미국 대도시의 공항과 비슷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평범했다. 인천공항처럼 새집 증후군(?)이 채 가시지 않은 새 공항도 아니었고, 라스베가스 공항처럼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번쩍번쩍한 슬롯머신들이 나를 반겨주는 특이한 공항도 아니었다. 그래도 시드니 공항에서 보는 하늘은 한없이 맑고 푸르렀다.

기내식을 모두 챙겨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배가 고파서 일단 밥부터 먹기로 했다. 뱃속에 기생충이나 외계인이 살고 있는게 틀림없다. 보안구역을 빠져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맥도날드에 가서 밥을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 인터넷에 연결하려고 했는데, 와이파이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공항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와이파이를 이용하려고 했지만 너무 느렸다. DHCP 서버로부터 IP 주소를 할당받은 후 웹 인터페이스를 통해 사용자 등록을 하는 과정이 있는데 (아마도 MAC 주소를 등록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 과정을 여러번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다행히 맥도날드에서 제공하는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건 30분 시간 제한이 있었다. 한국이 확실히 이런 면에서는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짐을 가볍게 싼 덕분에 위탁 수화물로 보내지 않고 모두 기내 수화물로 가지고 올 수가 있었다. 수화물 찾는 곳에서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현지에서 마련할 것들이 몇가지 있었다.

선불 심카드

시드니 공항에 내리면 호주의 주요 통신회사인 OptusVodafone의 부스를 볼 수 있다. Telstra는 없었다. 두 회사의 선불 심카드 가격 조건을 비교해보니 Vodafone 쪽이 더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할인 행사를 진행중이라 AU$35에 굉장한 조건을 제공했다.

  • 원래 가격은 AU$50 (약 43,000원)
  • 데이터 8.5GB
  • 호주 내 통화 및 문자 무제한
  • 한국을 포함한 12개의 국가로의 통화 1,000분
  • 그 이외의 국가로의 통화 50분
  • 유효 기간은 28일

SKT보다 훨씬 좋은데...?

한국에서는 약정 없이 band 데이터 2.2GB 요금제를 쓰고 있는데, 부가세를 포함한 월 정액이 46,200원이고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공한다.

  • 데이터 2.2GB
  • 한국 내 통화 및 문자 무제한
  • 영상통화, 부가음성통화 50분
  • 사용량 제한(quota)은 매달 첫날 초기화

가족 할인을 받아서 30% 할인된 가격에 사용하고는 있지만 할인된 가격을 고려해도 Vodafone쪽이 훨씬 더 넉넉한 혜택을 제공한다.

이렇게 놓고 비교를 해보니 SKT의 비싼 가격에 대한 분노가 은근슬쩍 고개를 들었다. SKT의 재무제표를 보면 2015년 기준 영업이익이 1조 7080억원, 가입자가 2863만명으로 나와있다.[1] 단순 계산으로 가입자 한 명당 연간 약 6만원 정도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는 소리이다. 영업이익률이 무려 9.97%이다. 반면, Vodafone의 경우 고객당 연간 25파운드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데[2], 이는 SKT의 절반 수준이다. 인구가 한국의 절반인 호주에도 메이저 통신사가 세 개는 있는데, 한국에는 더 많은 통신사가 있어야 업체들간 경쟁을 통해 가격이 내려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Vadofone은 호주 뿐만이 아니라 뉴질랜드, 유럽의 여러 국가들, 아프리카 일부 지역, 인도 등지에서 사업을 하는 거대한 다국적 기업이고, 고객들이 사용하고 있는 통신망의 품질, 각 국가별 소득 수준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SKT와의 단순 비교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SKT가 가격을 내리거나 같은 가격에 더 넉넉한 용량을 제공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실상 독과점 구조인 한국의 이동통신시장 덕분에 그렇게 할 이유가 없을 뿐.

하지만 나는 SKT의 고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주이기도 하다. 매년 배당금과 시세 차익으로 벌어들이는 돈으로 통신비의 일부를 충당하고 있다. SKT가 가격을 내리거나 혜택을 강화할 경우 영업이익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배당금이 줄어들거나 주가가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주주로서는 타격을 입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춰야 할지 잘 모르겠다.[10]

나의 분노 때문에 이야기가 잠시 지구 반대편에 있는 SKT 이야기로 빠졌는데, 다시 시드니 공항의 Vadafone 부스로 돌아오자. 직원분이 매우 친절하게 안내해주셨지만, 처음 접하는 호주 영어라 그런지 중간중간 잘 못 알아듣는 부분이 생겼다. 이 여행, 과연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렌터카

현지에서의 통신수단을 마련했으니 이제 이동수단을 마련할 차례다. 공항에 있는 Hertz의 부스에 가서 예약한 차를 찾으러 왔다고 얘기했다. 심카드를 구입할때와 마찬가지로 직원이 매우 친절하고 상세하게 계약 내용을 안내해주고, 추가 보험 조건 같은걸 안내해주셨는데, 중간에 잘 알아듣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몇번 다시 물어보게 되었다. (끄응...)

카운터에 카탈로그가 한 장 펼쳐져있었는데, 이용 가능한 모델 중에 머스탱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돈을 더 내고 머스탱으로 바꿀 수 있냐고 물어보니 직원이 무전기로 어디론가 연락을 했다. 잠시 후에 답변이 왔는데, 머스탱은 타이어에 문제가 있어서 정비중이라고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사실 자동변속기 달린 머스탱이 운전하기에 그렇게까지 재미있는 차는 아니다. 물론 내가 타봤던 3년 전 모델과 현재 모델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극적인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카탈로그를 둘러보다가 골프도 눈에 띄어서 혹시 골프를 대여하는 것은 가능한지 물어봤더니 골프는 다섯 대 밖에 없어서 이미 다 예약 되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그냥 원래 예약한대로 준중형 세단을 대여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렌터카는 예약을 할 때 자동차의 클래스만 지정할 수 있고, 카운터에 가서 예약된 차를 찾을 때 실제로 어떤 차를 받게 될지 결정된다. 예를 들면, '중형 세단'을 예약했다면 예약된 차를 찾을 때 까지는 그게 현대 쏘나타가 될지, 토요타 캠리가 될지, 그것도 아니면 닛산 알티마가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차를 하루이틀만 쓰려고 빌리는 것도 아니고, 짧다면 짧지만 긴 기간이라고도 볼 수 있는 12일동안 쓰려고 빌리는건데 자동차 모델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물론 렌터카 회사의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건 아니다. 예정 시간보다 늦게 자동차를 반납하는 고객이 있을 수 있고, 예상치 못한 고장이나 사고로 정비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특정 모델을 제공할 것을 약속하는 것 보다는 특정 클래스에 속한 모델을 제공할 것을 약속하는 편이 회전률을 높이고 재고 비용을 줄이는데 더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시드니 공항의 Hertz와는 대조적으로 Alamo 로스엔젤레스 공항 지점은 주차장에 가서 고객이 직접 마음에 드는 차를 골라서 가져갈 수 있게 되어있는데, 매우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중형 세단을 예약했다면 카운터에 가서 직원의 안내를 받은 후 주차장에 가서 마음에 드는 중형 세단 중 아무거나 골라 타고 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쪽 동네는 워낙 규모도 크고 고객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정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장기로 자동차를 대여하거나, 추가 금액을 지불하는 고객에게 자동차 선택권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2016 Toyota Corolla

그렇게 해서 나에게는 빨간색 토요타 코롤라가 주어졌다. 토요타 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갈수록 디자인이 퇴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뒷모습은 2008년형 코롤라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렇게 자동차 꼰대가 되어가는건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당당하게 차 문을 열었는데 조수석이었다. 아 맞다, 여기는 통행 방향이 반대였지. 다시 반대쪽으로 가서 운전석에 앉으니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제외한 모든것이 반대였다. 방향지시등 스위치가 오른쪽, 와이퍼 스위치가 왼쪽이다. 물론 변속기 레버도 왼쪽에 달려있다. 난생 처음 운전석에 앉았을 때의 설렘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차량을 대여할 때에는 출발하기 전에 자동차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게 좋다. 자동차에 흠집이나 파손된 부분이 있다면 계약서에 명시 되어있는지 확인하고, 명시되어있지 않다면 직원을 불러서 이야기를 하는게 좋다. 일단 렌터카 회사의 주차장을 벗어나면 자동차의 파손이나 결함이 내 과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훨씬 까다로워진다. 파손된 부위를 사진으로 찍어놓으면 추후에 분쟁이 생겼을 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몇 cm 이내의 짧은 긁힘, 고속 주행중 작은 돌이나 모래 알갱이가 튀어서 생긴 상처(paint chips), 문콕 상처, 범퍼 밑부분 긁힘 등은 일상적인 사용에 의한 마모(normal wear and tear)로 간주되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기계적 결함이 있는지 확인해보는것도 좋은데, 많은 경우에 Hertz와 같이 세계적인 렌터카 회사에서 운용하는 차량들은 출고된지 2-3년 이내의 새차이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소모품을 교환해주기 때문에[5] 중대한 문제가 생길 여지가 많지는 않다. 다년간 (미국의) Hertz를 비롯하여 여러 회사의 렌터카를 빌려서 수만킬로미터 이상을 주행해봤지만, 타이어를 제외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2013년쯤에 대여했던 차량의 타이어 중 하나에 미세한 구멍이 있어서 공기압이 서서히 낮아지는 문제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차를 받아올 때에는 멀쩡했지만, 하루가 지나니 한쪽 타이어가 눈에 띌 정도로 주저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다가, 렌터카 정비사들이 타이어 공기압을 잘 맞춰서 내보내기도 하고, 요즘 출고되는 차량들은 대부분 타이어 공기압 모니터링 시스템(TPMS)이 장착되어있기 때문에 압력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타이어의 노면 접촉면에 편마모가 있는지, 측면 벽(sidewall)에 눈에 띌만한 상처가 있는지 정도만 확인해봐도 충분할듯 하다.

사실 이번 여행은 자동차 여행인만큼 좋은 차를 빌려서 다니는 것에 대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번이 생애 마지막 여행도 아니고 노후 준비도 해야 하기에 자동차에 필요 이상으로 큰 돈을 지출하는건 자제하기로 했다.

사실은 이런 차를 빌리고 싶었다.

iPhone 7

이동수단까지 확보했으니 이제 캘리포니아의 과일 회사가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갈 차례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애플 웹사이트에서 아이폰 7 블랙을 장바구니에 담은 다음 시드니에 있는 모든 애플 스토어의 재고 상태를 알아봤지만 역시나 모두 품절이었다. 특히 이번에 새로 나온 젯블랙(Jet Black) 색상은 3-5주나 기다려야 받아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구경이라도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공항 근처의 애플 스토어를 무작정 찾아갔다. 조용히 아이폰이랑 맥북이나 구경하고 가려고 했었는데, 직원이 친절하게 인사를 해주어서 "혹시 아이폰 7 재고 있나요?" 라고 물어보았다. 내가 원하는 색상과 저장 용량을 묻더니 "잠시만요" 하고 손에 들고 있는 단말기에서 뭔가를 찾아보고는 "네! 마침 딱 한개 남은게 있네요" 라고 미소 띈 얼굴로 대답해주었다.

더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신용카드를 꺼내 구매했다. 결제를 도와주는 직원이 내가 가지고 있는 신한 Simple+ 카드의 디자인을 꽤나 마음에 들어했다.

이 카드를 정말 마음에 들어했다.

직원의 꼬임에 넘어가서 케이스도 같이 구매했다. 일단 써보고 마음에 안 들면 14일 내에만 가져오면 교환 또는 환불 해주겠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까지는 1,500원짜리 케이스를 쓰다가 4만원이 넘는 정품 케이스를 써보니 확실히 좋긴 좋더라. 가격에 비례해서 29배 좋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몇배 이상의 만족감을 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사실 아이폰이든 안드로이드 폰이든 요즘 나오는 폰은 기본적으로 매우 잘 만들었기 때문에 신제품을 구입한다고 해서 처음 아이폰을 만져봤을 때의 감동을 느끼기는 어렵다. 분명히 거의 모든 면에서 작년 모델보다 좋아졌지만 퀀텀 점프 수준은 아니다. 빨라진 프로세서, 넉넉한 저장 공간, 햅틱 피드백, 방수 기능, 향상된 카메라 등 모두 마음에 들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사진을 찍을 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나는 나의 아홉번째 폰인 아이폰 6s를 제외하고는 사진을 찍을 때 소리가 나는 폰을 단 한번도 써본적이 없다. 2000년대 초반에 한국에서 구입했던 폰은 사진을 찍을 때 소리가 나지 않았고, 그 이후로는 미국에 거주했기 때문에 셔터음이 나는 폰을 경험해볼 기회가 없었다. 아이폰 6s는 작년에 일본으로 여행갔던 친구한테 부탁해서 대리 구매를 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카메라 셔터음을 강제하는 국가는 한국이 전세계에서 유일하다고 알고 있었다. 일본에서 구입한 폰은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처음에는 "그래, 사람들이 얼마나 몰카를 찍어댔으면 이렇게까지 했겠어" 라는 생각이었지만, 지내다보니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컨퍼런스 발표장에서 사진을 찍을 때에는 옆사람에게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스피커를 손가락으로 덮어야 했다. 아이폰 6s 까지는 모노 스피커였기 때문에 아래쪽 스피커만 막으면 소리가 많이 줄어들지만, 아이폰 7부터는 스테레오 스피커이기 때문에 아래쪽과 위쪽 스피커를 모두 막아야 한다. 아이폰은 사진 뿐만이 아니라 스크린샷을 찍을 때에도 소리가 나게 만들어놓는 바람에 신경쓸 것이 하나 더 늘었다. 지하철에서 웹서핑을 하다가 재밌는 것을 발견해서 스크린샷을 찍을 때 혹시나 카메라 렌즈가 앞에 서있는 사람의 신체를 향하고 있지는 않은지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한번은 지하철 역에서 걸어가다가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는데 뭘 잘못 눌렀는지 갑자기 카메라가 켜지더니 의도하지 않게 사진이 찍혔다. 다행히 주변이 시끄러워서 찰칵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고, 사진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하게 나와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만약 그때 우연히 내 앞에 걸어가던 여성분의 허벅지와 엉덩이가 찍혔다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목격했다면 나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상상하면 섬뜩하다.

물론 몰카가 한국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점은 잘 알고 있다. 대중교통 뿐만이 아니라 워터파크 탈의실이나 화장실 같은 곳에서 찍은 몰카가 인터넷을 통해 배포되는 사건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것 또한 문제이다.[3][4] 그래서 정책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렇게 셔터음을 강제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충동이 들 수도 있다는 점도 이해한다. 단기간에 사법 체계를 바꾸거나, 경찰력을 증원해서 지하철에 배치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으니 단기적 미봉책으로서 셔터음을 강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미봉책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면 곤란하다.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고, 수요가 있는 한 방법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셔터음 강제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강한 의구심을 가지게 만든다. 심지어 스마트폰에 카메라 모듈을 탑재를 금지하는 법안이 발효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몰카를 찍을 방법을 어떻게 해서든 마련할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사회 체계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부정행위, 특히 성범죄와 같이 다른 사람의 삶에 커다란 피해를 주는 행위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지금같은 솜방망이 처벌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6][7][8] 물론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성범죄 처벌 강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성범죄 발생 비율이 낮다는 사실을 뒷받침할만한 자료가 있어야 하지만, 각국의 성범죄 통계 방법의 차이, 수사기관에 보고되지 않은 범죄 등으로 인해 현재 나와있는 자료만으로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기 때문에[9] 이 주제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는 다음 기회로 미루어두었다.

아무튼 다시 소리가 나지 않는 폰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 매우 만족스럽다. 사진을 찍을때마다 우렁찬 셔터음이 나는 나의 아이폰 6s에게 편지를 쓴다면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생필품

아이폰때문에 생각의 가지가 좀 멀리까지 뻗어 나갔었는데, 다시 여행 얘기로 돌아올 때이다. 사실, 별 생각 없이 애플 스토어 하나만 보고 온 쇼핑몰인데 안내 표지판을 보니 식료품점을 비롯해서 매우 다양한 상점들이 있었다. Coles라는 이름의 식료품점이 있어서 안쪽으로 들어가봤다. 넓은 공간에 다양한 농산물과 여러가지 포장식품들이 즐비했다. 내가 관심 있게 보는 품목들의 가격도 (한국과 비교하여) 대체적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미국의 마트에서 느껴볼 수 있는 풍요로움을 여기서 다시 느껴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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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생수, 키친타월, 물티슈 등을 여행에 필요한 잡다한 물건들을 구매했다. 여기서 영어 팁 한가지. 미국 사람들은 식료품점을 grocery 라고 하지만, 호주 사람들은 supermarket 이라고 한다.

스마트폰 마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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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빌리 자동차에는 네비게이션이 장착되어있지 않다. 렌터카 업체에서 네비게이션 장비를 대여할 수도 있지만, 무료이면서 훨씬 똑똑한 구글맵을 이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손에 폰을 들고 운전하는건 위험하기도 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법적으로 금지된 사항이기도 해서 스마트폰 마운트를 하나 구입했다. 다음번에 차를 빌릴 때에는 세상이 조금 더 발전되어 있어서 코롤라 같은 보급형 자동차에도 속도와 엔진 회전수와 같은 전반적인 상태를 표시해주고 길 안내를 해줄 수 있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가 기본으로 장착되어있었으면 좋겠다.

여행 준비 완료

이제 정말로 본격적인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 여행하는 내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통신수단과 교통수단을 마련했고, 가방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한국에서 가져오지 않은 생필품들도 모두 구했다. 현지에서의 여행 준비를 마치고 나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하) 편에 이어서 계속...

References

[1]http://www.sktelecom.co.kr/sktelecom/ir/ir02_04.jsp
[2]http://www.vodafone.com/content/annualreport/annualreport15/assets/pdf/financials.pdf
[3]김 양수. "워터파크 몰카 사주男 4년6월·촬영女 3년6월…실형." 노컷뉴스, 14 Jan. 2016.
[4]박 용하. "여성스텝 '화장실 몰카' 찍은 유명 뮤지컬 배우, 징역 5월." 경향신문, 2 Oct. 2016.
[5]Cole, Craig. "Under the Hood: Should I Buy a Rental Car?" AutoGuide, 20 Mar. 2013.
[6]김 동철. "검찰 '다리찍은 몰카범 징역 가혹' 이색 항소... 법원, 벌금으로." 연합뉴스, 23 June 2016.
[7]임 우재. "제주 몰카 동영상 촬영 유포자 징역 2년 선고." 현대뉴스, 주간현대, 8 Jan. 2016.
[8]SBS 뉴미디어부. "여성 승객 104명 몰카 촬영한 택시기사 징역 1년." SBS 뉴스, 29 Oct. 2016.
[9]이 훈동. "성폭력범죄에 대한 유럽 각국의 형량 및 형집행 실태."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Notes

[10]아직은 SKT로 인해 벌어들이는 돈보다 SKT에 지불하는 돈이 훨씬 더 많으니 당분간은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