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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기 전에 일단 관련 기사문을 먼저 읽어보자. ‘95억’…삼성동 아이파크 펜트하우스, 역대 최고 감정가 공매로 나와

9,500,000,000원. 숫자가 너무 커서 그런지 언뜻 얼마나 큰 금액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95억원을 모은다면 한달에 100만원씩 저축하고, 연 이율 3%, 단리, 일반 과세(15.4%)를 가정했을 때 무려 2,672개월, 그러니까 214년이 걸리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물론 이정도의 금액을 일반적인 노동 수익으로 모으는 사람은 없겠지만, 어쨌든 굉장히 큰 금액임에는 틀림없다.

Tony Stark's Mantion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가 사는 멋진 주택도 아니고, 고작 공동 주택 꼭대기가 95억원이라니.

내가 공동 주택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다름이 아닌 엘리베이터이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워서 내 삶에 쓸데없는 불확실성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운이 좋아서 버튼을 누르자마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1층이나 지하 주차장까지 한번에 갈 수도 있지만, 어떤 날은 운이 좋지 않아 한참을 기다려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내려가는 중간에 몇번 더 서는 경우도 있다. 불확실성도 문제지만, 기계를 타고 이동하는데 걷는것보다 느린 것을 용서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도 동료들과 함께 다니는 경우가 아니라면 계단을 이용하는 편이고, 백화점에서도 엘리베이터보단 에스컬레이터를 선호한다. 펜트하우스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느라 낭비하는 시간을 1년간 합산해보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며, 36층까지 도달할 수 있는 사다리 차가 없기 때문에[citation needed] 불이라도 나면 건물 안에 마련된 소화전이나 스프링쿨러를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탈출로가 막혔다면 완강기를 타고 내려가거나 구조용 헬리콥터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고층 건물의 숙명이다.

내가 공동 주택을 좋아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개인에게 온전히 보장된 공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공동 주택과 집주인의 관계는 등기부등본상으로는 분명히 내 집이지만 온전히 내 집이 아닌, 내 집인듯 내 집이 아닌듯한 이상한 관계이다. 층간 소음에 주의해야 되기 때문에 집 안에 트레드밀을 놓고 운동하거나 친구들을 초대해서 락밴드 합주를 해서도 안 된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에게 집에서는 뛰지 말라고 항상 주의를 주어야 한다. 음악을 들을때 조차도 “내가 원하는 음량인가” 보다는 “이웃집에 들리지는 않을까” 를 더 많이 신경써야 한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가장 사적인 공간인 내 집에서 나의 온전한 자유가 보장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건 매우 슬픈 일이다.

기사에 언급된 주택의 장점이라면 (적어도 한국 기준으로는) 집이 넓다는 것, 한강이 내려다 보인다는 것, 학교, 쇼핑몰, 공원, 체육 시설 등 기반 시설이 잘 갖추어졌다는 것, 고속도로 접근성이 좋다는 것, 그리고 지하철 7호선 청담역, 9호선 봉은사역과 가깝다는 것 정도이다. 이러한 것들은 분명 장점이긴 하지만, 95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면서도1 클래스가 다른 부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내가 보기엔 이 95억짜리 집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양식이 같은 지역에서 9억 5천만원짜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나 전세보증금 9,500만원짜리 소형 공동 주택에서 사는 사람의 생활 양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집에 개인 차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드넓은 마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뒷마당에 골프 코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헬리콥터 착륙장이나 요트 선착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분명 좋은 집이긴 하지만 복잡한 도심 속 공동 주택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집을 사지 않는 이유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 탓도 있지만, 나의 현재 생활권에서 현재의 소득 수준으로 현실적으로 구입 가능한 주택은 공동 주택밖에 없어서 그런 면도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 했던 내용을 봤을 때 나는 한국 부동산 시장의 실질적, 잠재적 구매자들보다 공동 주택에 대한 내재적 가치를 훨씬 더 낮게 평가 하고 있는 것이 틀림 없다. 공동 주택이 단독 주택과 비교하여 가지는 장점이 있다면 벽 너머로 존재하는 이웃집 덕분에 얻는 단열 효과로 인한 높은 에너지 효율과2, 좀도둑과 시정잡배를 막아내는 수준의 약간 향상된 보안 정도일 것이다.3

95억원짜리 공동 주택이라.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다. 그러한 집의 가치를 내가 필요 이상으로 낮게 평가하고 있을수도 있고, 그 집에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들은 내가 보지 못하는 가치를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기회가 된다면 그런 집에 사는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다.

  1. 혹은, 해당 금액의 상당 부분을 조달하기 위해 막대한 금융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2. 하지만 우리집은 두 면이 건물 외벽이고, 한 면이 복도, 다른 한 면이 엘리베이터 타워와 접하고 있어서 사실상 이러한 단열 효과를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다. 

  3. 어차피 그 이상은 못 막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나같은 평범한 소시민을 표적으로 삼을만한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