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전쟁

월급이 왜 통장을 스쳐가는지 모르는 사람은 월급쟁이뿐이다.

책의 맨 첫 부분에 나오는 말이다. 오묘하고 멋진 말이다. 매달 월급쟁이의 지갑을 털어가는 주범이 세금(직접세 및 간접세)이라는 것과 월급쟁이 그룹이 조세저항이 가장 적은 그룹이라는 점[citation needed]을 감안하면 이 말은 사실이다.

사실 세금 말고도 월급쟁이의 지갑을 털어가는 놈들은 수도 없이 많다. 인플레이션, 환율, 신용카드, 마이너스 통장, 펀드 수수료, 보험, 부동산, 학자금대출, 국민연금 등 일일히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책에서 이러한 사항들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짚어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몇 가지만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간접세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소비를 할 때 무려 10%나 붙는 부가가치세를 비롯해서 주세, 유류세 등 굉장히 많은 간접세를 내고 있다. 이쯤 되면 “아니, 정부가 뭘 한게 있다고 내가 컴퓨터 한 대 사는데 세금을 십만원을 넘게 떼어가고, 내가 퇴근 후에 동료들이랑 맥주 한잔 하겠다는데 세금을 떼어가?” 라는 의문을 가질만도 한데,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본인이 간접세를 내고 있다는 사실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깐부치킨 영수증

퇴근 후에 동료들과 치킨과 맥주를 조금 먹고 마셨을을 뿐인데 7천원이 넘는 세금을 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 사진도 있다.

직접세는 보통 소득에 비례하지만, 간접세는 맥도날드 알바생이나 일반적인 월급쟁이나 대기업 회장님이나 동일한 비율로 낸다. 게다가 월급쟁이들은 세무당국에 소득이 투명하게 공개 되어있고, 소득에서 원천징수를 당하기 때문에 부정한 방법이든 정당한 방법이든 세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 그렇게 많지 않다.

인플레이션

인플레이션이야말로 아무런 저항 없이 사람들의 부를 강탈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아닐까 한다. 정부가 별다른 이유 없이 사람들의 은행 계좌에서 매달 몇만원씩 빼 가면 아주 난리가 날텐데, 인플레이션 때문에 줄어드는 자산 가치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훨씬 무디게 반응한다. 만약 내 은행 계좌에 천만원이 있고, 한 해 동안의 물가 상승률이 3%라고 가정하면 나는 가만히 앉아서 30만원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럼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서 통화 발행 주체(일반적으로 정부)가 통화량을 늘리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통화량이 증가했는데 시장에 있는 재화의 양은 변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화폐의 가치는 떨어지고 상품의 가치는 올라가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월급쟁이가 인플레이션에 대항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저 매년 발생하는 금융 수익이나 임금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앞지르기를 바라는 것 뿐.

낙수현상의 허상

정말로 기업이 잘 되면 국민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까? 기업의 성장률과 고용 증가율, 그리고 재무제표에서 직원들의 임금으로 지출하는 돈의 비율을 보면 답이 나온다.

환율

이 책에서는 한국 정부가 원화를 평가절하해서 의도적으로 고환율 정책을 유지한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한 뒷받침 자료를 제시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결국 환율 방어도 월급쟁이들이 떠맡고 있는 꼴이다. 수출품의 가격이 낮아져서 수출 기업은 많은 돈을 벌겠지만, 수입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오르기 때문에 소비 주체인 월급쟁이들이 그 부담을 떠 안게 된다.

신용카드와 마이너스 통장

마이너스 통장의 잔고가 음수일 때 발생하는 이자는 월 단위 복리이다. 신용카드는 연이자율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높다. 마이너스 통장은 단기간 융통할 현금이 필요할 때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고, 신용카드는 이번달에 쓴 돈을 다음달에 내도 된다는 점이 매력적이지만, 둘 다 잘못 사용하면 개인 재무 건전성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객관적인 통계 자료는 제시하지 못하겠지만,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관찰 결과에 의하면 마이너스 통장과 신용카드가 위험한 이유는 사람들이 이것을 부채가 아니라 재산(estate)으로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은행 계좌에 100만원이 있고, 신용카드 한도가 200만원이라면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300만원이 아니라 100만원이다. 다만 신용카드 덕분에 그 돈을 한 달 늦게 낼 수 있는 것이다.1 마찬가지로 내 월급이 100만원이라면 내가 매달 쓸 수 있는 돈은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에 관계 없이 100만원이다. 책에서는 신용카드와 마이너스 통장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지만,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 둘이 내 재산이 아니라 잠정적 부채라는 점만 잘 기억한다면 둘 다 굉장히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2

보험

보험은 꼭 필요한 것만 들자.

부동산

최근 정부가 부동산담보대출비율(LTV; loan-to-value ratio)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 debt-to-income ratio) 규제 완화를 통해 부동산 시장을 부양한다는 뉴스를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3 수도권 지역의 경우 과거에는 LTV가 50%였다가 최근에 70%로 완화되었는데, 이 말을 풀어 해석하자면 1억원짜리 집을 사려면 과거에는 내 돈 5,000만원에 나머지를 빚으로 충당해서 살 수 가 있었지만, 이제는 내 돈 3,000만원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DTI는 소득 대비 부채 상환액 비율을 규정하는 것인데, DTI가 60%라는 말은 월급이 100만원인 사람이 매달 원금과 이자를 합하여 상환할 금액이 60만원을 넘을 수 없다는 말이다.

결국 이 두 가지 규제를 완화했다는 것은 정부가 사람들에게 주택을 구입하라고 부추기는 것과 다름 없다. 실제로 규제 완화 이후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4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으로 1%대 금리의 주택담보대출 상품까지 출시됐으니,5 이정도면 집을 안 사는 사람들이 이상해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우리는 학교에서 역사는 반복된다고 배우지 않았는가? 지금 한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은가? 정부와 은행들이 나서서 사람들에게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것도 모자라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집단에도 무분별하게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모습은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매우 흡사하다. 그렇게 키운 부동산 거품이 꺼졌을 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수많은 은행이 쓰러졌고, 저소득층이나 중산층 할 것 없이 평생 쌓아올린 부가 한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citation needed]

한국은 한가지 위험 요소를 더 안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국민총생산(GDP)대비 부동산 시가 총액의 비율이 436%로 어마어마하게 높다는 것이다.6 미국은 114%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국부가 부동산에 치중되어있다는 소리인데, 부동산 거품이 꺼졌을 경우 우리가 받는 경제적 타격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클 수도 있다.

그래서 결론은?

결국 아는 것이 힘이다. 털리지 말자.

  1. 신용카드 청구서에 찍힌 금액을 기한 내에 제대로 납부하기만 한다면 연체 이자나 리볼빙 이자를 낼 일도 없다. 

  2. 나는 마이너스 통장을 주로 공모주 청약 증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사용한다. 공모 청약 경쟁률이 수백대 일 수준으로 워낙 높기 때문에 실제 청약이 되는 물량은 신청 물량의 극히 일부분이다. 따라서 실제 청약이 된 물량은 자기 자본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며, 큰 금액을 마이너스 통장을 통해 며칠간만 대출함으로써 발생하는 이자는 만원이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724_0013067435&cID=10401&pID=10400 

  4. http://www.moneyweek.co.kr/news/mwView.php?no=2015031212268064474 

  5. http://www.yonhapnews.co.kr/economy/2015/01/27/0302000000AKR20150127051700003.HTML 

  6. 손, 은경. “주요국의 주택가격 비교와 시사점.” KB경영정보리포트 2013-11호. KB금융지주, Nov. 2013.